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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K-컬처와 인공지능
K-컬처가 일군 문화 생태계
‘K-인공지능’ 성장의 자양분
한국적 서사 핵심 자산 될것
K-컬처가 글로벌 콘텐츠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BTS의 컴백 라이브는 넷플릭스를 타고 190여개국에 생중계되었고, 케데헌의 골든은 골든글로브, 그래미, 아카데미를 차례로 석권했고, 로제의 아파트는 글로벌 차트를 장악했다. K-팝은 단순히 음악장르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K-팝 열풍에서 시작된 관심은 영화와 드라마, 뷰티와 음식, 패션, 화장품, 문학, 애니메이션과 예술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한국 드라마는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의 핵심 콘텐츠가 되었고, 한국영화 ‘기생충’과 ‘어쩔수가 없다’는 세계영화제에서 인정받았고,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성공들은 개별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증폭시키며, 점점 더 강력한 세계적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얼마 전 친한파 미국인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K-팝 현상에서 재미있는 점은, K-팝 자체의 발전에도 있지만, 다양한 K-컬처 플랫폼이 어떻게 함께 진화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한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영화와 드라마는 한국 음식과 생활 문화로 호기심을 확장한다. 뷰티와 패션은 아이돌과 콘텐츠를 따라 움직이며 소비를 자극한다. 어느 하나의 산업 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효과가, 이 다층적 연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이러한 문화 생태계는 한국의 글로벌 존재감을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바꿔 놓았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는 눈에 띄게 증가했고, 전자제품·화장품·소비재를 막론하고 한국 브랜드는 강력한 K-컬처 이미지의 후광을 얻고 있다. 문화는 더 이상 취향이나 여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우리 정부가 K-컬처를 단순한 문화상품이 아니라 핵심 국가 자산으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컬처의 성공은 과학기술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국적 인공지능의 개발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알고리즘과 연산 능력,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주목한다. 물론 이러한 인프라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능은 코드와 연산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어, 이미지, 이야기, 감정, 가치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같은 데이터를 통해서 학습된다. 이런 의미에서 AI는 본질적으로 문화를 흡수할 수밖에 없다.
K-인공지능을 추진한다는 것은 우리의 독자적 기술 파운데이션을 구축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문화를 흡수하고 이해하고 생성해내는, 문화적 기반을 가진 AI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어, 한국의 역사와 감정, 미학과 서사를 깊이 학습한 거대언어모델은 영어권 지능을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한국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서술하고, 상상하는 AI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은 매우 드문 조건을 갖춘 나라다.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독립적인 언어와 문자 체계를 지니고 있고, 텍스트·영상·음악·이미지 등 방대한 문화 데이터가 이미 비트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웹툰과 드라마, 학술논문과 대중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으로 밀도 높은 자료가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K-인공지능이 출발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또한, K-컬처의 성공은 왜 이것이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이나 한강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이유는 지역성을 지웠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불평등, 상실, 욕망, 소외 같은 보편적 주제를 매우 한국적인 공간과 감수성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 힘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다. 이는 인공지능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일반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게 될수록,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 시대에 문화가 중요할까 라기보다는, 다가올 시대에는 어떤 문화가 기본값이 되는가이다. 지능은 문명과 문화 속에서 생성된 언어와 경험의 데이터 속에서 학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K-컬처의 성공은 분명한 교훈을 준다. 세계적 영향력은 자기 문화의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 그 목소리를 다른 문화와 연결시키려는 노력, 그리고 그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이제 그 시스템의 한 축에 AI가 자리 잡고 있다.
김영춘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6년 4월 14일 경상일보 “[경상시론]K-컬처와 인공지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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