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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뉴스

[최진숙의 문화모퉁이(35)] 서사 없는 항해

시련과 좌절은 인간 성장의 밑거름
과잉 보호는 자립의 기회 빼앗아
스스로 선택할 결단의 용기 길러야

  • 기고
  • 최진숙
  • 2026.09.02
  • 3615

[최진숙의 문화모퉁이(35)] 서사 없는 항해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가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 간의 귀환 여정과 고난을 다룬 대서사시이다. 영화, 만화 등 많은 대중문화의 형식으로 재생산된 것은 물론 이야기 속의 인물과 발생한 일들은 두고두고 문학 작품 속에서 인용, 재현되었다.


최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오디세이아>를 책으로 다시 읽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대서사시의 매력은 스펙터클한 신화적 상상력 때문만은 아니다. 거친 바다와 세이렌,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를 온몸으로 통과해 내는 ‘한 인간의 고독한 투쟁’이다. 아무런 위험도 없이 직선 항로가 제공되었다면, 오디세우스의 서사는 없을 것이고, 결국 영웅으로 기억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영웅 서사는 서양 신화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이 기존 시스템의 안온함-밀실과 광장-을 거부하고 제 3국이라는 불확실한 바다로 향했던 실존적 선택이 그러했다. 시인 윤동주 역시 안락한 타협 대신 시대의 시련과 책임을 십자가처럼 지고 걸어갔다. 이처럼 위대한 실존의 서사는 남이 깔아준 비단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시련의 바다를 건너기로 결단한 청년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사회는 청년들에게 좌절을 견딜 기회,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른 위험과 책임을 무릅쓸 기회를 주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 ‘참교육’과 같은 드라마에도 재현되는 과잉 보호 현상은 초중고 교실을 넘어, 지성과 자율의 최후 보루여야 할 대학 교정에서조차 기이한 풍경으로 재현된 것을 발견했다. 수강 신청이나 기숙사 아침 식사 시간을 두고 부모의 전화 민원이 걸려 오는 풍경은 이제 생소하지도 않다. 심지어 대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위해 자랑스럽게 수행하는 대외활동을 두고, (학생 본인도 아닌) 단과대학장이 나서서 “출석을 인정해달라“며 교수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대학생의 대외활동은 본래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배분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간혹 불가피하게 수업 불참으로 인한 불이익과 리스크를 무릅쓰며 감행하는 ‘자율적 도전’이다. 무릇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내린 선택의 달콤한 열매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손실까지 오롯이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나 학과장까지 나서서 그 선택의 대가(라고 해봤자 하루 이틀 결석으로 인한 손해)를 대신 보상해 줄 때, 대학은 성인을 배출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체구만 커진 아이들의 어린이집’으로 전락하고 만다.


세이렌의 매혹적인 노래에 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돛대에 묶었던 오디세우스처럼,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친 바람을 읽는 눈과 결단의 용기다. 선택의 리스크를 제거해 준다는 것은 독립된 성인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청년들에게서 박탈하는 것이다. 청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은 포세이돈의 성난 바다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다 위에서 노를 저어 나갈 수 있도록 기꺼이 닻을 올려주는 일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거대한 바다에서 거센 파도를 맞을 준비를 하라고 화려한 어휘로 청년의 뒤를 떠밀지만, 그저 인공수영장에서 튜브를 주면서 수영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마녀 키르케의 섬이나 연꽃 먹는 자들의 섬은 달콤한 안식만 있는 공간이지만, 그곳에 안주할 때 인간은 짐승이 되거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른들의 과도한 통제와 케어는 청년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바깥세상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갈 항해술을 잊게 만든다.


저 넓은 바다에서 항해를 시작할 청년들은 결국 자아의 서사를 만들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직 파도와 맞서 키를 잡는 순간에만 비로소 자아의 서사를 완성해 가기 때문이다.


최진숙 UNIST 인문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6년 9월 2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35)]서사 없는 항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