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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 AI시대의 사용자 혁신
사용자, AI 활용 맞춤형 혁신 주도
기업, 폐쇄적 제품 중심 전략 넘어
사용자 중심 개방형 생태계 전환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혁신의 주체는 주로 생산을 담당하는 쪽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만든 하이닉스와 삼성전자, AI모델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OpenAI, 앤스로픽, 구글 등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생산자가 사업을 기획하고 연구개발(R&D) 활동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면, 사용자는 출시된 결과물을 소비한다. 그런데 AI 시스템의 발전·확산과 함께, 그동안 소비 쪽만 담당한다고 여겨왔었던, 그래서 혁신의 주체로서 과소평가되었던 사용자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의 시대가 활짝 개화하고 있다.
사용자 혁신의 개념을 정립한 에릭 폰 히펠(Eric von Hippel) MIT 교수는 일찍이 사용자가 스스로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만들어가는 혁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혁신의 민주화’를 예견했다. 과거에는 아이디어를 실체화하기 위한 전문 지식의 장벽과 시제품 제작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 일반 사용자의 혁신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아 왔다. 그런데 AI 시스템의 발전과 확산이 혁신의 문턱을 무너뜨리며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숙련된 코딩 기술이 없는 비전문가도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을 활용하고, 일반인도 AI 에이전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혁신은 기업 R&D 센터 소속의 연구실과 실험실 뿐만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평범한 사용자의 거실과 사무실, 그리고 보통의 일상에서도 시작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혁신을 재정의한다. AI 시대의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고 생산하는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혁신의 핵심은 제품 그 자체보다 제품을 활용하는 방식인 사용 시스템(system-of-use)의 고도화로 옮겨가고 있다. 기술기업이 제공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범용적이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가치는 사용자가 이를 자신의 특수한 맥락과 결합해 재설계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특정 분야의 연구자가 자신의 독창적 방법론에 최적화된 AI 에이전트를 직접 구축하거나, 자영업자가 자신의 매장 환경과 고객 성향에 맞춰 자동화 워크플로우를 독자적으로 설계하는 행위 자체가 이제는 중요한 혁신 활동이 된다. 향후 AI가 창출할 거대한 경제적 가치의 상당 부분은 기업의 표준화된 서비스가 아니라, 이러한 사용자가 주도하는 맞춤형(user-led customizing) 작업을 통해 파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도사용자(lead user)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시장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스스로 대안을 찾는 이들은 이제 단순히 기술을 소비하는 집단이 아니라, AI를 도구 삼아 자신만이 가진 복잡한 도메인 지식을 실제 솔루션으로 변환하는 지휘자(orchestrator)로 진화하고 있다. 범용 AI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최종 소비와 접하는 마지막 구간(last mile)에서의 세밀한 가치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현장의 고충과 맥락을 가장 잘 아는 사용자들의 몫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의 생존 전략 역시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과거처럼 완제품만을 고집하며 사용자와의 인터페이스를 제한하는 폐쇄적 모델로는 사용자들의 폭발적인 혁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이제 기업은 사용자가 직접 제품을 변형하고, 자신의 필요에 맞게 확장할 수 있는 혁신 툴킷(innovation toolkit)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용자의 창의성을 규격화된 제품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할 때 기업의 생태계 경쟁력도 극대화될 수 있다.
사용자 혁신의 활성화는 단순한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의 변화와 재편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는 AI 시스템의 단순 활용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AI를 활용해 직면한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학습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제도적으로는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혁신과 공유 행위가 낡은 지식재산권 체계나 경직된 규제의 벽에 부딪혀 사장되지 않도록 유연하고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AI 기술혁명의 시대에는 기술과 제품의 공급을 넘어서, 어떻게 사용자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사용자 혁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이 AI 대전환 시대에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회를 잡을 것이다.
김영춘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6년 9월 1일 경상일보 “[경상시론]AI시대의 사용자 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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